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읍내리

가평군청 소재지이자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가평읍 읍내리 ( 邑內里 ) 는 예로부터 관좌 ( 官座 ) 가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그 유래가 다양하다 . 일찍이 고려말 풍수지리에 대가이던 정도전 ( 鄭道傳 ) 이 가평에 이르러 이곳 지리가 영묘 ( 靈妙 ) 함을 보고 관좌의 터로 적합하다 이른 연유로 현 ( 縣 ) 터를 정했다고 한다.

대곡리

대곡 ( 垈谷 ) 이란 높은 언덕 , 또 는 둔덕이란 뜻이 내포된 곳이라는 말로서 안터골이 변해 안골로 불려 오며 ( 역전뒤 ), 지금은 안말로 부르고 편안일자 일촌 ( 逸村 ) 으로도 기록해 옴을 볼 수 있다.

상색리

빛고개란 높은 언덕을 빗겨 넘 는 고개라는 뜻으로서 이 고개가 대체로 비탈로 이루어지고 , 또 그 형상이 빗겨 있다는 뜻이다 . 상색리 ( 上色里 ) 리란 빛고개 위 부락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.

하색리

하색리란 상색리 ( 上色里 ) 와 대칭되는 말로서 빛고개 아래 부락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.

두밀리

두밀리 ( 杜密里 ) 로 가는 길은 같은 개울 ( 하천 ) 을 열두번이나 벗고 건너야 하는 꼬불꼬불한 협곡을 이루고 있어 이곳을 십이탄 ( 十二灘 열두물결 ) 건너 부락이라 불렀다.

경반리

경반리라는 이름은 거울처럼 비쳐지는 반석이란 뜻인데 , 이곳에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대체적으로 넓적 넓적하며 또 이 부락의 진산인 수정봉도 문자 그대로 수정 ( 水晶 : 반짝반짝 빛나는 새끼치는 돌 ) 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거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성 싶다.

승안리

구한말까지만 해도 승안산 ( 升安山 )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으며 , 이는 이곳 고을 전체가 어찌 보면 산으로 연이어져 있기 때문이었으리라.

마장리

각 군현에는 군마 ( 軍馬 ) 를 합해 수백필씩의 말을 길렀으며 , 그 말들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장소를 마장 ( 馬場 ) 이라 불렀으니 서울에 마장동 ( 男場洞 ) 이 그것이고 , 가평의 마장리 ( 馬場里 ) 가 바로 그런 장소였다.

개곡리

개곡 ( 開谷 ) 이란 이름은 고을 ( 谷 ) 이 열린다 ( 開 ) 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, 이곳으로 흐르는 계곡의 모습이 마치 수만의 대군 ( 大軍 ) 을 이끈 장수가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 망망대해 ( 도시 ) 로 들어간다는 형국의 지형이라고 한다.

이화리

조선조 영조 시절까지만 해도 이화리는 영골 ( 永洞 ) 로 기록되었는데 그 이름이 격에 맞지 않는다 하여 배곶이의 배자를 배이 ( 梨 ) 자로 하고 곶을 꽃화 ( 花 ) 로 써서 이화리라는 순한문식으로 작명한 것이라 그때부터 이화리라는 이름으로 불려 온다.

산유리

산유리는 본디 산유동 ( 山踰洞 ) 과 버들골 ( 柳洞 ) 로 나뉘어 있었는데 1942 년 관제개편당시 산유동 ( 山踰洞 ) 의 산 ( 山 ) 자와 유동 ( 柳同 ) 의 류 ( 柳 ) 자를 따서 산유리 ( 山柳里 ) 라 이름한 것이다.

복장리

복장포부락은 현재 복장포초등학교가 있는 곳의 소지명으로 복골 ( 福谷 ) 이라 부르고 , 긴복골 ( 長福谷 ) 또는 장복포 ( 長福浦 ) 라 하여 이곳의 하천이 북한강으로 유입될 때 포구 ( 浦口 ) 를 이루어 그 모습을 나타낸 이름일 것이라는 설이 그럴듯하다.

금대리

금대 ( 金垈 ) 라는 말은 쇠터의 한문식 이름이다 . 이 지역은 청평댐을 막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금 ( 沙金 ) 이 많이 채취되었는데 아마도 쇠터란 이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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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수정일 : 2023.02.03